본문 바로가기
  • 茶와사랑에빠지다
자체제작 고수차

09년 의방 봄 고수차 [09年 倚邦 春 古树茶]

by 황비홍님 2009. 5. 18.

09년 의방 봄 고수차

09年 倚邦 春 古树茶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진작에 공개했어야 하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소개가 좀 늦어졌습니다.

새 봄이 되다 보니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올해 4월 5일이 청명(清明)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시겠지만 청명, 곡우는 차의 품질을 구분하는 중요한 절기로

이번 제품은 정확히 청명 전후로  4월1~10일 채엽한 차청으로

보름 정도의 압병, 포장, 운송 과정을 거쳐

5월 첫째주 도착한 물건인데 사진준비하고, 품차하다보니

 이제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물건은 의방(倚邦) 봄 고수차로 

유락(攸乐), 혁등(革登), 망지(莽枝), 만전(蛮砖), 만살(慢撒), 의방(倚邦)

로 분류되는 고육대차산(古六大茶山)중에서 현재 이무 지역과 함께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고 가장 먼저 황제에게 바치던 공차로

역사 속 한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

이런 저런 긴 설명이 필요없는 바로 의방(倚邦) 차입니다.

 

 

의방(倚邦) 차산 지리적으로 운남 서쌍판납 맹납현 상명향에 속합니다.

남쪽으로는 만전(蛮砖)차산, 서쪽에는 혁등(革登)차산,

동쪽에는 만살(漫撒)차산이 위치하며 면적이 약 360평방정도로

육대차산 중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해발의 차가 큰 것이 특징입니다.

의방차산내에는 대엽종과 소엽종이 두루 분포하는데

그 중 의방의 소엽종 차청은 일반 대엽종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알려저 있어

많은 보이차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차청으로

그 중 만공(曼拱) 만송(曼松) 방((倚邦) 이 지역의 차가 아주 유명합니다. 

 

의방차산의 가장 중심지는 倚邦古镇으로 불리는 의방가(倚邦街)로

예전 보이차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의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제작한 고수차는 이 곳 주변 차산의 차청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수령이 아주 오래된 중소엽종 차수가 주를 이루고 있는고차수원입니다.

  의방 차산의 전경입니다. 산아래 구름이 자욱한 것이 한폭의 그림같습니다.

 의방고진의 중심 거리로 지금은 낙후된 조용한 촌락으로 변했으나

촌에는 어울리지 않은 길게 뻗은 도로와 양옆에 늘어선 건물, 그리고 울퉁불퉁 말발굽에 패인 바닥돌이

오래전 이곳이 아주 번성한 거리였음을 말해줍니다.

 

의방차산은 명대에 이미 이주민에 의해 차밭이 형성되었고

태족, 이족, 기낙족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며 차를 주업으로 하였습니다.

이후에 청대에 들어서면서 의방차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처음으로 황실에 바치는 보이차로 지정되어 많은 양이 공납되었고

특히 청나라 건륭, 도광, 광저 이 시기는 의방차가 최고 번성하던 시기로  

의방은 그당시 육대차산의 정치,경제  보이차 교역의 중심지로

보이차의 명성은 의방차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청말기엔 이무차산이 입소문을 타면서

보이차 교역의 중심이 점점 이무차산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특히 그 당시 사회가 혼란해지고 역질이 돌면서 차농들이 흩어지고

1942년 소수민족간의 내전으로 인해 의방이 불바다가 되면서

폐허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의방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차마고도의 발견과 육대차산의 명성이 다시 살아나면서

의방 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불과 30여집 백여명 정도 남아 있던 가난한 의방 마을은

 다시 관광객들이 하나둘 찾아오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의방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차마고도의 흔적입니다.

차마고도의 길은 마방의 긴행렬과 함께 사모, 의상, 맹왕, 보원을 거쳐 의방으로 이어집니다. 

위아래 조그만 4장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으로

청대~민국시절 차마고도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의방거리의 흔적입니다.

 

고차수원의 전경입니다.

 

많은 분들이 소엽종이라 하면 녹차나무와 같은 작은 관목을 떠올리실텐데

의방의 소엽종은 대엽종과 비슷한 주관이 뚜렸한 소교목형 차수로

특히 수령이 오래된 의방의 중소엽종 고차수들은 

평균 키가 3미터를 넘고 둘레가 30~90센치나 되는 아주  건실한 모습이여서

얼핏 보면 재배형 대엽종 차수와 구분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전학상 특징으로 보면 대엽종과는 구분되는 차종으로

대엽종에 비해 차수의 키가 작고, 잎의 크기가 작고, 얇으며,

주맥이 불분명한 중소엽종 차종이 맞습니다.

 

 

 

대엽종이 주를 이루는 운남에 의방 소엽종이 전파된 이유에 대해

아직까지도 학자간에 의견이 분분한데

명대에 사천지역 차농들이 이주를 하면서 소엽종 씨를 가져와

이곳에 심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근거있고 믿을 만한 학설로

운남 자생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포장지 앞면입니다. 큼직하게 의방 고수라 적혀 있습니다.

그 동네 원주민들이 전통방식으로 직접 제작한 전통 한지로

탈색제를 첨가하지 않아 종이의 색깔이 누렇습니다.

새로 제작된 내비입니다. 의방 고수춘차라 한지에 한자한자 붓으로 썼구요.

붉은 도장으로 2009년 기축년(己丑年)을 표시하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기축이라 쓴 한자가 고대 상형 글자체로 도대체 알아볼수가 없네요. 

중소엽종 차청이여서 그런지 잎의 크기나 껑의 굵기가 대엽종 고수차보다는 작고 얇습니다.

차칼을 넣어보면 차잎이 한올한올 잘잘하게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100cc개완에 5g을 뜯어 넣었습니다.

 

자세히 보신 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앞서 소개한 올 봄 고수차에 비해

의방 고수차는 병면의 색이 어두운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의방지역의 모든 소엽종 차청이 이런 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번에 제작된 소엽종 의방차청의 몇가지 특징을 보면

잎의 크기가 작으면서 좀 길구요. 잎색깔이 어린 봄차청임에도 비교적 진한 녹색을 띕니다.

모차에 붙어있는 백호의 양도 다른 고수차에 비해 부족하구요.

 

3번째 30초 탕색입니다.

  8번째 30초 탕색입니다.

 

차를 마셔보시면 과연 "명불허전(名不虚传)" 임을 알수 있습니다.

뭐라 설명드리기 힘들지만 기존의 대엽종 고수차와는 완전히 다른 맛을 냅니다.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고, 진하구요. 지금 바로 마셔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차기는 아주 충족한데 고삽미는 아주 가볍습니다.

신기하게도 몇번 우리고 나니 뒤에 천천히 입안에 고삽미가 느껴지는 군요! 

 특히 이번 의방차는 아주 달콤하고 진한 단향과 쭉쭉 당기는 감칠맛이 특징입니다.

높고 강한 청향이 아니라 밑에 깔리는 진한 달콤한 향이 아주 좋구요,

차의 침출물이 풍부해서 차탕도 아주 진하고 감칠맛이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회감도 휼륭하고 생진작용도 아주 빠른 것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품질을 자랑합니다.

 

사실 현대 보이차는 월진월향의 원칙을 기본으로

오래 묵힌 맛과 향을 중요시하다보니

지금 당장보다는 오래 묵혔을때 좋은 맛을 내는 쓰고 떫은,

내포성이 좋은 강한 느낌의 대엽종 차가 주를 이룹니다만,

 

옛날 청대에 유행하던 황제가 즐기던 보이차는

그 해 새봄에  채엽된 어린차청으로 만든 생차로 

햇빛에 말린 쇄청 녹차의 개념으로 그 생생함을 즐겼던 것으로

우리가 알고 마시고 있는 지푸라기 썩는 냄새가 나는

 발효된 보이차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대형차창이 만드는 신차 청병의 경우 대부분 

병배한 대지차를 가지고 유념을 반복해서 만든 보이차로

한결같이 쓰고 떫어 바로 마시기 불편한 것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제작한 강한 차성을 지닌 포랑산 고수차도 마찮가지로

아무리 차기가 좋고 향이 좋은 고급차청 고수차라 하더라도

이렇게 강하고 마시기 불편한 물건을 황제가 마셨을리는 없겠다 싶은 것이

그렇다면 그 옛날 황제에게 바쳤던 보이차는 과연

어떤 맛이였을까? 아주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번 의방 고수차를 마셔보니 바로 답이 나왔습니다.

 

묵혀 먹는 보이차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

바로 마실수 있는 부담없는 보이차로

부드럽고 달콤한 의방차는

가장 완벽한 맛과 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제 스스로도 이 정도면 황제에게 바쳐도 될만한

공차로 부족함이 없는 물건을 만났습니다.

 

 

엽저를 보시면 다른 차산의 찻잎에 비해 크기는 작고 그 대신 긴 것을 볼수 있습니다.

잎의 특징은 튼실하지만 아주 부드러워 쉽게 찟기는 경향이 있구요.

진하고 점성이 좋아 접혀있는 엽저를 펼쳐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잎을 펴지 않고 그냥 펼쳐놓기만 한 것도 많습니다.

엽저의 크기가 나카차에 비해서는 고르지 못합니다.

  

사실 이번 의방 춘차는 조춘차로 판매할까 했었습니다.

청명을 끼고 전후 열흘간 채엽된 차청이여서

그냥 조춘차로 불려도 무방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이번 의방봄 고수차는 제 양심상

청명전 채엽한 차청만 사용해야 하는 진정한 조춘차의

기준에 좀 부족하였고, 특히 3월 차청으로 제작할수 있었음에도

너무 비싼 3월 모차가격으로 인해 품질 가격을  모두 고려해서

시기를 좀 늦춰 4월 첫주 제작한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의방 고차수 모차의 수량이 넉넉하지 못한 관계로

제작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을 몇 곳의 차청을

10kg, 20kg씩 모아서 제작한 물건으로

봄차청의 크기가 조금 불규칙한 것을 인정하여

봄차로 판매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숨길수 있었던 모든 상황을 솔직히 밝히고

판매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차를 드셔보시면 의심없이 만족하실만한

품질에 자신이 있고 가격이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엽종임에도 왜 의방차를 최고의 보이차로

손꼽는지 왜 황제에게 바치는 공차로 의방차가 처음 선택되었는지

차를 마시다보면 이 모든 것에 의문이 풀립니다.

말씀드렸지만 부족한 모차 양으로 인해 소량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