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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茶와사랑에빠지다
자사호 전시관

탑죽호[일창 갑자니]15020227-판매완료

by 황비홍님 2015. 2. 3.

 

 

 

 

 

 

 

품명 : 탑죽호(塔竹壶)

재질 : 일창 갑자니

용량 : 130cc

작가 : 형계주제[荊溪朱製]

 

 

이 작품은 국영일창에서 제작한 갑자니 탑죽호(塔竹壶) 작품으로

계주제[荊溪朱製] 저관이 찍혀 있는,  일창 작품중에서도 

82소품이라 불리는 조기(早期)일창 고급상품호입니다.

 

아시겠지만 자사 일창의 역사는 56년~97년까지 입니다.

70년대까지 일창 작품은 대륙으로 가는 대용량호와

동남아 화교권과 일본으로 가는 수평호로 단순하게 나뉘다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사일창의 제2막이 시작되는데

홍콩의 유명 소장가이자 명인 주문제작호의 시조인

나한상(羅漢祥) 생으로 인하여 자사일창의 주고객이

홍콩, 대만으로 바뀌고, 명인호 수출시장이 개척됩니다.

이전의 민국개량형식과 수평호 위주의 작품에서

콩 대만 소장가들에 어필하기 위해 다량의 모구제작이 시작됩니다.

이쪽사람들이 오룡차를 즐겨마셔 자사호의 용량도 작아집니다.

이렇게 제작된 호들이 82년을 기점으로 대량판매되고 전부 사이즈가 작아

소장가들에 의해 82소품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82소품이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니료의 우수성때문입니다.

이 당시 사용된 니료들은 주로 4호광 니료들로

요즘 고급, 대사급 명인들이 사용하던 니료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때 일창 병자니가 처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병자니가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첫번째는 이 당시 모구가 다양해져

가소성을 높여야 했고 두번째는 이전 일창의 문혁 청수니류는

색감이 단조롭고 옅어서 남방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에 어필하기위하여

더욱 다양하고 선명한 색감의 니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후에 8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자사 일창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모구는 같지만 니료의 수준과 수공이 점점 떨어지게 되어서

현재 80년대 초반 작품과 후반 작품의 가격이 2배이상 차이가 납니다.

 

소개한 탑죽호는 당시에 가장 유행하였던 갑자니 흑성토입니다.

자사 일창 출신 고급공예사, 대사들이 애용하는 니료입니다.

갑자니는 흑성토를 일컸는데 84년 갑자년에 자주 보였다고 해서

갑자니라고 대만사람들이 이름을 붙혔다고 합니다.

당시 자사일창호는 모두 홍콩의 4대차창을 통해 대만으로 건너 갔는데

갑자니가 사용되었던 시기는 자사일창에서 80년대 초반이 유일합니다.

이후에 이 니료가 유명해지니까 많은 이들이 망간을 병배하거나

철이 많은 흙들을 흑성니, 흑성토라 부르는데 이것과 분명 차이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