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 자사창에서 출시하는 상품에 상표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77년부터 입니다.
당시 자사호의 생산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주요 목적으로,
주로 외국에 판매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던 자사일창은 기술역량 및 축적된 기술면에서 당대 최고였습니다.
1997년 자사일창이 민영으로 바뀔 때 까지 20년간 자사일창의 상표는 크게 몇단계로 구분됩니다.
1. 타원형 녹표 : 1977년~1982년 사이
타원형의 모양 때문에 보통 계란표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이 복흥(다시 부흥)하던 시기로 정체상태에서 천천히 생산을 회복하던 시기로
공예수준이 좋았던 시기는 아니지만 문혁의 영향으로 니료의 풍화, 부패시기가 길었던 관계로
자사 니료의 품질이 가장 좋았던 시기로 꼽힙니다.
2. 무상표 : 1983년~1987년 사이
잠시 상표 없이 출시되던 시기로 당시 "갑자니"가 유명합니다.
갑자니는 대만인들이 80년대 초기 일창의 보통자니와 병배니를 부르던 통칭입니다.
당시 자사의 원광 태토를 확인하면 불규칙적인 작고 미세한 황색, 검정색 입자를 눈으로도 확인할수 있었는데
흑색입자가 아주 명확하여 흑마태토, 흑성태도라 불립니다.
갑자니는 갑자년에 생산된 것이 아니고 갑자년 전후 몇 년간 생산된 것으로.
대략 82년부터 이런 태토의 자사호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갑자년 이후 몇 년간 줄곧 이런 호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자사 일창은 먹고 살만한 시기로 화교상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여 대만 자사호 애호가들이 자사 시장의 회복을 이끌었고
자사가 국제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공예수준도 점점 개선되었고 자사 니료의 품질도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갑자니의 출현은 니료의 품질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고 평가 받습니다.
보통 이 두시기의 자사호를 “
이 시기의 니료는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품질로 애호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시장에 유통되는 진품이 아주 적을 뿐아니라 진품의 경우 고가에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3. 방원패(백표) 1987~1992년 사이
아래의 4종류의 상표는 소위 "백표"로 부르는데 각기 다른 인쇄상태의 상표가 그 시기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87년~92년 사이에 혼용되었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일본, 태국에 수출한 상표가 소량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창의 전성시기로 일창이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전하던 시기였고
타지 상인들의 참여로 요구가 높아져 공예와 디자인 수준이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던 시기로
다양한 자사상품을 시장에 출시하였고 우수한 품질의 자사원광을 보유하던 시기로
자사호 생산에 있어 전체적으로 한차원 높은 품질의 향상을 이루어 내었다고 합니다.
90년대 초 경제개혁개방이후 가짜 일창 모방품들이 난립하게 되어 현재 방원패 상표의 있고 없음은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위조 방지 상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87~88년 초기 방원패로 종이질의 백표로 비닐코팅이 없습니다. 수량이 적습니다.
금색 방원패입니다. 일창의 전성시기로 가장 많이 보이는 상표입니다.
백표 방원패입니다. 일창의 전성시기로 가장 많이 보이는 상표입니다.
황록 방원패로 시간이지나면서 금색이 변색되어 황록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4. 홀로그램 상표 1993~1997년
이 시기는 우수한 자사니가 조금씩 줄어들던 시기로 자유경제도입에 따른 시장의 혼란과 생산 환경의 악화로 상품의 품질이 점점 떨어지던 시기로 경영난 악화로 결국엔 국영 일창 및 기타 국영 공방이차례대로 문을 닫거나 민영화되게 되게 됩니다
레이져로 만든 홀로그램을 상표에 도입하였습니다.
위의 자료는 중국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참조 번역하여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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